옛날에는 청평댐에서 현재 HJ천주천보수련원 앞을 지나 모곡까지 연락선이 다녔다. 강원도 출신의 사업자가 배를 운행했다. 참부모님께서 지금의 원성전 터 자리에 갈 때 그 배를 늘 이용하셨다.
참부모님께서는 낚시 장소를 지금의 원성전 터 앞까지 옮기시기 전 건너편 천유장 아래 골짜기 강가에서 낚시를 하셨다.
그리고 노 젓는 작은 배를 타고 상류로 올라가며 홍천강과 남이섬까지 샅샅이 살펴보셨다. 강 속에 줄을 넣어 수심을 전부 재어보게 하셨다. 강을 탐사해 본 결과 가장 깊은 곳은 선인봉 아래였다.
산이라는 산도 전부 올라가 보셨다. 참부모님께서는 성지를 택정하시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셨다.
1970년 말과 1971년 초에 본격적인 초교파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 활동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기독교 목사들이 몰려오게 되었다. 수양회와 공청회를 청평에서 하기로 하고 급하게 지은 것이 천막
수련원이였다.
본래 그 자리는 뽕나무 밭이었다. 참부모님께서 강에서 낚시를 할 때 그 곳에 개인용 텐트를 쳐 놓고 쉬기도 하며 지내셨다. 그러다가 목사 공청회를 하기 위해 미군이 쓰는 대형 군인 텐트를
설치하기로 하고 터 고르는 작업을 했다. 그 첫 작업은 1971년 6월 17일, 참부모님의 곡괭이질로 시작되었다. 당시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서둘러서 시작하신 것이다.
36가정 지구장들도 합류해 일을 도왔는데 밤에는 잘 곳이 없었기 때문에 갖다 놓은 천막 텐트를 펴놓고 그 위에서 잠을 잤다.
대형 텐트가 완성된 뒤 그 곳에서 몇 차례 수양회 및 공청회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텐트에서는 교육의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수련원을 짓기로 하고 본격적인 건축 작업에 들어갔다. 초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건물을 완공하려고 참부모님께서 먼저 삽질을 하셨다. 그리고 36가정들이 땅을 파고 석축을 쌓았다. 그 후 임도순 회장을 중심으로 신학생(미발령 교회장) 30여 명의
특공대(건설단)가 열심히 일을 했다.
처음에 축대 쌓을 때 외부 전문가들을 데려다가 썼다. 그런데 비가 오자 전문가들이 일을 하러 오지 않아서 참부모님께서 나오셨다. 당시 특공대 30여 명을 데리고, 참부모님께서 진두지휘하셨다.
참부모님께서 작대기로 “야, 돌 그거 요래 놔. 저렇게 놔라.” “이렇게 쌓아라”고 전부 가르쳐 주셨다. 참부모님께서 시키는 대로 돌을 쌓았다. 그 뒤에 장마가 와서 막 물이 많았다가 마당에
물이 올라왔다. 물이 쫙 빠져나가니까 전문가들이 쌓았던 것은 다 무너졌다. 그러나 참부모님께서 쌓으신 것은 끄떡없었다. 참부모님께서 하신 것을 보고 모두 놀랬다. 참부모님께서는 뭐든지 하나
하셔도 이미 다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참부모님의 심정만 가지고 하면 무엇이든지 되는 것이다.
참부모님의 많은 정성과 진두지휘 가운데 청평수련원(원성전)이 1971년 7월 12일 완공되었다.
원성전은 참부모님께서 축대 쌓기로부터 건물 건립까지 원로식구들과 함께 만드셨다.
현재 남아 있는 축대를 잘 보면 아래 부분이 거무스름하고 윗 부분이 비교적 하얗다. 거무스름한 아래 부분이 1971년 당시 참부모님께서 진두지휘하시면서 쌓으신 부분이고 비교적 하얀 윗 부분은
1999년 천성왕림궁전 건설과 동시에 조성된 것이다.
1960년대 말 천심호 일대에서 낚시정성을 들이기 시작하신 참부모님께서는 처음에는 남의 나무배를 빌려 쓰셨는데 불편해서 지나가는 나무배 상인으로부터 나무배를 구입하셨다. 이는 다음에 모터보트를
구입하시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이 나무배는 노후화로 폐기되어서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천승호(天勝號)는 1963년 6월 26일 경기도 인천시 동구 만석동에 있는 조선장에서 참부모님 주재로 진수식이 거행되었다. 참부모님께서는 이날 말씀을 통해 “천승호는 하늘이 승리했다는 뜻이며
오늘 이 천승호 진수식은 하늘 땅, 모든 승리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셨다.
그리고 천승호는 1971년 9월 21일 인천에서 청평수련원에 도착했다. 그 후 배 위 3층 부분이 천심호 호숫가(현 청심평화월드센터 앞 부근)에서 참부모님의 지휘 하에 증축되었다. 천승호는 당시
청평수련원에 온 식구들이 많이 이용하였는데 현재 효정카페가 있는 후미에 정박했다.